AI 시대에는 잘 쓰는 콘텐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AI 덕분에 잘 만든 콘텐츠는 많아졌다. 그런데 왜 기억에 남는 글은 드물까?
요즘은 AI만 잘 활용해도 글을 정말 빠르게 작성할 수 있다.
트위터 글도, 블로그 글도, 영상 스크립트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며칠씩 붙잡고 있어야 했던 글이 이제는 몇 분 만에 꽤 그럴듯한 형태로 나온다. 문장은 자연스럽고, 구조는 깔끔하고, 맞춤법도 거의 틀리지 않는다.
나 역시 실제로 AI를 자주 활용한다. 글의 초안을 잡을 때도 쓰고, 문장을 다듬을 때도 쓰고, 생각을 정리할 때도 쓴다.
그런데 AI를 계속 쓰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자꾸 남았다.
AI로 쓴 글은 분명 깔끔하다. 읽기에도 편하고, 틀린 말도 거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매력이 없어 보일 때가 있다. 잘 정리되어 있는데, 다시 읽고 싶지는 않은 글. 흠잡을 곳은 없는데, 이상하게 기억에는 남지 않는 글.
요즘 콘텐츠는 점점 더 잘 정돈되고 있는데, 이상하게 점점 덜 기억에 남는다.
잘 쓴 글은 많아지고 있지만, 오래 남는 글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틀린 말이어서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정리되어 있고, 너무 반듯하고, 너무 논리적이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글에서 사람 냄새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잘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다
AI 시대에 “잘 쓰는 콘텐츠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글의 완성도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문장이 엉망이어도 된다는 뜻도 아니고, 구조가 없어도 된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이제는 잘 쓰는 것 자체가 더 이상 강한 차별점이 아니게 됐다는 뜻이다.
AI는 평균적으로 좋은 문장을 정말 잘 만든다. 읽기 편하고, 흠잡을 곳 없고, 어디에 내놓아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문장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너무 평균적으로 좋은 문장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약간 위험한 문장, 조금은 과한 주장, 자기 경험에서 나온 집착, 어딘가 인간적으로 어색한 표현 같은 것들이 사라진다.
잘 쓴 글은 읽기 쉽지만, 사람 냄새나는 글은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읽을 때는 편한데,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사람 냄새는 수작업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사람 냄새나는 콘텐츠는 AI를 전혀 쓰지 않고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만 만든 콘텐츠를 뜻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다. 그 안에 자기 생각과 관점이 들어가 있는가다.
AI를 써도 사람 냄새가 나는 글이 있고, 사람이 직접 써도 아무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글이 있다. 결국 차이는 누가 타이핑했는지가 아니라, 그 글 안에 무엇을 믿는 사람이 남아 있는가에 있다.
사람 냄새는 문장의 투박함이 아니라, 관점의 흔적이다.
나는 무엇을 겪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는가. 무엇에 불편함을 느꼈는가. 어떤 문장을 쓰면서도 끝까지 양보하고 싶지 않았는가.
이런 것들이 남아 있어야 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각처럼 읽힌다.
비슷한 온도의 글들
요즘 콘텐츠를 보다 보면 비슷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제목은 다르고, 형식도 다르고, 다루는 주제도 다르다. 그런데 읽고 나면 묘하게 같은 온도의 글처럼 느껴진다. 많은 콘텐츠가 결국 비슷한 방식으로 정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 제기, 핵심 요약, 세 가지 이유, 결론.
구조는 안정적이고 정보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왜 이 이야기를 하는지, 무엇에 집착하는지, 어떤 경험 때문에 이런 관점을 갖게 되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관점의 밀도는 낮아질 수 있다.
AI 시대에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글도, 영상도, 정보 자체는 넘칠 것이다. 정리 잘된 콘텐츠, 요약된 콘텐츠, 깔끔한 콘텐츠는 계속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 희소하지 않다.
희소해지는 것은 관점이다
오히려 앞으로 더 희소해지는 것은 이 사람만의 생각이 들어간 콘텐츠일 가능성이 높다.
조금 거칠더라도 자기 관점이 느껴지는 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아도, 이 사람이 무엇을 믿고 어떤 방향으로 세상을 보는지가 느껴지는 콘텐츠. 사람들은 결국 그런 콘텐츠를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AI가 글을 잘 정리해줄수록 나는 오히려 더 자주 묻게 된다.
내 생각의 온도까지 같이 정리되고 있는 건 아닐까.
문장이 더 좋아지는 것과 내 관점이 더 선명해지는 것은 다르다. AI는 표현을 도와줄 수 있지만, 내가 무엇을 믿는지 대신 정해주지는 않는다. 글의 구조는 대신 잡아줄 수 있지만,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는 대신 만들어주지 못한다.
AI를 쓰되, 지워지지 않기
그래서 앞으로 더 중요한 질문은 AI를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AI를 써도 그 안에 자기 관점이 남아 있는가. AI가 문장을 다듬어도 내 경험과 판단이 지워지지 않는가. 읽기 좋은 글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불균형까지 없애고 있지는 않은가.
AI 시대의 강한 콘텐츠는 가장 완벽한 콘텐츠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건 잘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글이라는 감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정보만 기억하지 않는다. 그 정보를 바라보는 사람의 태도와 온도를 함께 기억한다.
AI가 콘텐츠를 더 빠르게 작성하게 해줄수록, 우리는 오히려 더 분명하게 남겨야 한다. 이 글이 누구의 생각인지. 이 문장이 어떤 경험에서 나왔는지. 그리고 나는 왜 이 이야기를 지금 해야 한다고 믿는지.
